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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 언제나 몇 번이라도

 

 

 

 

 

 

 

가을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겨울보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밤이었다. 고개를 들면 보여야 할 작은 달은 검은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고 사람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이 거리에 듬성듬성 심어진 가로등만이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존재였다. 내일은 비가 오려나.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에 입고 있던 카디건의 옷소매를 쭉 끌어당겨 손을 감췄다. 한숨과 함께 생겨난 하얀 입김, 추위로 빨개진 귀 끝, 오랜 기다림에 뻐근해지는 다리. 네 연락을 기다리는 일은 이렇게나 추운 일이었다.


[지수야] - 16/10/1 오후 11:19

 

 


 

 

 

 

 

 

언제나 몇 번이라도

 

 

 

 

 

 

 

 

 

너를 찾는 일은 아까와 똑같은 기다림을 세 번 정도 겪고 나서야 익숙해졌다. 네가 있을 곳은 뻔했다. 그러나 걱정하는 것은 너를 찾는 것이 아닌 네가 느끼고 있을 슬픔과 아슬아슬함이었다. 숨이 가쁘게 도착한 곳은 지어진 지 꽤 되어 보이는 빨간 벽돌로 된 건물이었다. 남은 힘을 다해 옥상 문을 여니 너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옥상의 난간을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었다. 그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땐 두려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었다. 정한이가 밤바다 위를 걷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정한아.

왔어?

응, 나 왔어.

 

 

 

너는 나를 보며 살며시 눈을 감았다. 나는 네 앞에 서 팔을 벌렸다. 가볍게 내 품으로 쓰러진 정한이를 한 번 세게 끌어안으니 답답한 담배 냄새가 났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정한이에게 찾을 수 없는 냄새였다. 이 냄새가 어디서부터 비롯됐는지 알고 있으니까. 기분이 더럽다. 내 발 옆에 치이는 아무 죄 없는 담배꽁초를 눌러 밟곤 옥상을 나가기로 했다.

 

 

 

 

 

 

 

난간에 선 정한이를 처음 본 다음 날엔 정한이가 눈을 뜨자마자 다음부터 절대 그러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무섭다고, 너랑 떨어진다는 게. 내 말에 정한이는 슬며시 웃으며 말했다.

 

내 나름대로 널 기다리고 있는 거야. 지수 얼굴 볼 때까지. 나 정신 차리고 있으려고. 그 좁은 난간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으면, 정신이 내가 서 있는 곳에만 모아지더라. 아무 생각도 안 들고. 위험한 거 아는데, 가만히 있으면 자꾸 나쁜 생각이 들어. 그러니까 지수야, 나 빨리 보러 와 줘. 너무 보고 싶었어.

 

 

 

 

 

 

 

 

집에 도착하니 어느덧 한 시를 지나고 있었다. 작은 주황빛 스탠드를 켜고 정한이와 함께 고른 진한 남색의 이불을 걷어 살며시 눕혔다. 피곤하더라도 씻는 건 꼭 빼놓지 않는 정한이를 위해 마른 수건 두 장과 따듯한 물이 담긴 볼을 가져왔다. 침대 옆에 걸터앉아 어딘지 모르게 슬픈 얼굴을 보고 있자니 목이 메어 왔다. 얼굴을 가리고 있던 머리카락을 귀로 넘겨 주니 가려져 있던 붉은 상처가 드러났다. 집을 나선 지 몇 시간밖에 되지 않아 생긴 상처였다. 착잡한 마음에 입술을 꾹 물고 물에 살짝 적신 수건으로 상처 주변을 살살 쓸어냈다. 설핏 찡그려진 눈썹을 보고 방금보다 힘을 빼어 정한이의 하얀 얼굴과 목, 손을 차례대로 닦여 내려왔다.

 

 

지수야 왜 안 자.

깼어?

 

 

 

정한이는 손을 닦아 주던 내 손을 잡은 채 나를 보며 돌아 누웠다. 걱정이 가득한 표정을 한 나와 달리 괜찮은 척하는 정한이가 안쓰러워 보였다.

 

 

 

밉다, 윤정한. 이런 상처까지 만들어 오고.

나 행동 느린 거 알잖아. 피할 새도 없더라.

다음부터 안 가면 안 돼?

지수가 같이 운동 다니자고 할 때 다닐걸.

정한아.

그게 됐으면... 됐으면 진작에 그랬을 거야.

 

 

 

 

이제서야 정한이의 솔직한 표정이 드러났다.

 

 

 

 

우리 엄마, 가실 때도 다른 사람 앞에서 가셨어. 이젠 내가 옆에 있어드려야지. 그래야 맞는 거지. 지금까지 우리 엄마 힘들게 했던 사람 옆에 있는 모습은 내가 못 보겠어서 그래.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생긴다고 해도, 언제든, 몇 번이라도 난 그 사람한테 갈 거야.

 

그래도 지수야, 나 미워하진 마. 나 너 두고 어디 안 가.

 

 

 

 

 

정한이는 마지막 말과 함께 다시 눈을 감았다. 잡은 손에 힘을 꼭 준 채로. 지금 정한이가 부리는 고집은 애초부터 내가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정한이와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 사이에. 잠깐이라도 욕심을 부린 나 자신이 미워졌다. 내가 아니더라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리워했을 텐데. 정한이 옆 좁은 공간에 정한이를 바라보며 가까이 누웠다. 그리고 누구보다 고단한 하루를 보냈을 너를 위로하기 위해 다가가 끌어안았다.

 

 

 

 

나도 네가 웃으며 돌아오는 날까지 널 데리러 갈 거야. 언제나, 몇 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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